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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무게를 아는 배우 | 박정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는 법

책갈피 요정 2025. 6. 14.

박정민, 문장의 무게를 아는 배우

 

어느 배우의 서재, 아버지의 책장에서 시작된 이야기

배우 박정민의 글과 책을 향한 애정은 그의 유년 시절, 아버지의 책장에서 비롯된다. 어릴 적부터 시각장애가 있으셨던 아버지는 그에게 ‘책은 절대 버리는 것이 아니다’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비록 아버지가 운전을 못 해 지하철을 타야 하는 현실이 어린 마음에 투정이 되기도 했지만, 낡고 노래진 책을 소중히 간직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그의 삶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 배경은 그가 단순히 글 잘 쓰는 배우를 넘어, 책의 물성을 사랑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존중하는 출판인이자 서점 주인이었던 행보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열쇠다. ‘기시감이 드는 배우의 표정’에 쉼을 결심하고, 손으로 글을 쓰는 아날로그적 생활을 즐기는 그의 모습 속에는, 한평생 묵묵히 불편을 감내하며 책을 아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애틋함이 짙게 배어 있다. 그의 모든 이야기는 바로 그 책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무죄'라는 이름의 출판사, 소외된 것을 위하는 마음

박정민이 출판사 ‘무죄(Muje)’를 설립한 의도는 결코 가볍지 않다. G-DRAGON의 노래가 먼저 검색되는 웃지 못할 상황에도 그가 ‘제목 없음’이라는 이름을 고수한 이유는, 거창한 의미보다 진실된 행동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 행동의 중심에는 시력을 거의 잃게 되신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를 위해 쓴 첫 책을 정작 아버지는 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상심했던 그는, 시각장애인 독자들도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독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소외된 것을 위하여’라는 출판사의 모토 아래, 그는 베스트셀러가 되어야만 했던 책 『첫여름 만주』를 기획했다. 이는 단순히 책을 많이 팔기 위함이 아니라, 시각장애인 독자들이 ‘요즘 가장 인기 있는 책을 우리가 먼저 즐겼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간절한 의도에서였다.

쓰고 싶지 않기에, 오히려 써야만 하는 작가의 역설

그의 최신작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의 줄거리는 그의 작가적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글쓰기 싫은 32가지 이유를 나열하는 그의 글은, 역설적이게도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낸다. 그는 글을 쓰는 행위가 자신의 내면을 들키는 것 같아 두려웠고, 본업인 연기에 소홀하다는 오해를 살까 쑥스러웠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과거의 자신(『쓸 만한 인간』)에 영원히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는 다시 펜을 들었다. 그의 글을 추천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배우와 작가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솔직한 고민과 성장의 기록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책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내면을 응원하는 일이며, ‘소외된 것을 위하는’ 그의 의미 있는 여정에 동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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