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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추천도서

『1945, 철원』으로 되짚어보는 해방과 분단의 기억

by 책갈피 요정 2025. 5. 29.

이현 작가의 역사소설 1945, 철원 양장본 표지 이미지
군인과 민간인, 기차역 앞을 오가는 사람들, 짐을 든 소녀들은 전쟁 직전, 해방기의 혼란과 피난을 상징합니다,

잊혀진 도시에서 분단의 상징으로 - 철원군

6월 하면 생각나는 지역이 있습니다. 강원도 철원군입니다. 철원군은 지리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한반도 중심부에 위치한 철원군은 화산활동과 단층운동이 빚어낸 땅입니다. 서울과 원산 사이를 가로지르는 추가령 구조곡의 한가운데 자리한 철원은 약 54만 년 전부터 12만 년 전까지 이어진 화산 분출로 만들어진 지형입니다. 뜨거운 용암이 철원평야를 뒤덮었고, 그것이 한탄강을 따라 흐르며 오늘날 우리가 보는 직탕폭포, 고석정, 비둘기낭 폭포 같은 독특한 풍경을 남겼습니다. 이러한 지질학적 특성 덕분에 철원은 202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되었죠. 하지만 철원의 의미는 지형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철원은 역사 속에서도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삼국시대 고구려의 ‘모을동비’에서 이름이 유래되었고, 후삼국 시대에는 궁예가 도읍으로 삼으며 ‘태봉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금강산으로 가는 관문으로 기능하며 문인과 사대부들이 자주 찾던 문화의 요지였고, 일제강점기에는 경원선 철도와 금강산 전기철도를 따라 관광지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광은 6·25 전쟁과 함께 무너집니다. 철원은 ‘철의 삼각지대’라 불리는 격전지로 변하며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고, 전쟁 이후 원래 철원이 있던 지역은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남게 됩니다. 대신 동송읍과 갈말읍으로 철원 사람들은 이주해 새로운 삶을 꾸려갔고, 오늘날 신철원과 구철원으로 나뉘어 기억 속의 도시로 존재합니다. 자연과 역사가 만들어낸 철원은 지금도 분단의 현실을 오롯이 보여주는 생생한 장소입니다.

해방 공간 속 이념의 충돌, 1945 철원

이현 작가의 장편소설 『1945, 철원』은 1945년 8월 해방 이후부터 1947년까지 철원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역사소설입니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종살이를 하던 경애를 중심으로, 해방이라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냅니다. 철원은 해방 이후 소련군정이 주둔하게 되며 공산당이 주도하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 잡습니다. 양반과 종의 관계는 뒤바뀌고, 지주들은 남하하며 권력의 중심이 바뀌어 갑니다. 경애는 양반집 도련님이었던 기수와 친구가 되고, 양반집 딸 은혜와 같은 서점에서 일하며 새로운 시대를 살아갑니다. 그러나 희망이 가득할 줄 알았던 세상은 곧 갈등으로 얼룩지기 시작합니다. 철원에는 우익 청년 조직인 ‘철원애국청년단’이 생기며 인민위원회 활동을 방해하고, 주민들을 위협하는 사건들이 이어집니다. 경애, 기수, 제영은 이 조직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경성으로 떠날 결심을 합니다. 반면 은혜는 철원에 남아 애국청년단과 접촉하며 숨겨진 목적을 실행에 옮기기 시작합니다. 이후 독립운동가 출신인 홍정두가 청년단의 손에 암살되며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됩니다. 경애 일행은 용의자로 몰려 체포되고, 배후에는 경애의 큰언니 미애와 은혜가 있음이 밝혀지며 이야기는 파국을 향해 달려갑니다.

혼돈 속에서 피어난 희망 - 1945 철원을 읽는 이유

『1945, 철원』은 단지 역사적 배경을 재현한 소설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혼란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등과 선택, 그리고 희망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경애는 가족과 친구를 잃고도 절망하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작가는 경애를 통해 “무엇이 옳은가”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습니다. 특히 이 소설은 철원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통해 민중의 혼란, 분단의 시작, 좌우 대립이 일상 속에 스며드는 과정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일본과 유럽에서도 번역되어 “역사를 알지 못한 세대에게 올바른 시선을 길러준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문학성과 교육적 가치도 높습니다. 『1945, 철원』은 6월 호국보훈의 달, 한국전쟁을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작품입니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단순한 교과서 정보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은 오늘의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철원을 기억하는 일은, 곧 한반도의 미래를 함께 그리는 일입니다. 6월이 되면 철원군으로 가서 역사적, 지형적 특징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몸으로 느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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