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술이 금지된 사회, 인간다움을 되묻다
김동식의 단편 「회색 인간」은 극한의 생존 상황 속에서 인간성과 예술의 가치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야기는 어느 날 만 명의 지상인이 땅속 세계로 끌려가며 시작된다. 그들은 땅을 파야만 다시 지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조건 아래, 감정도 대화도 없이 그저 곡괭이질만 반복하는 존재가 되어간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얼굴과 마음은 회색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하루하루를 버티는 존재가 된다. 하지만 그 고요한 절망 속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여자, 벽에 그림을 그리는 남자, 이야기하는 청년이 등장하며 변화가 시작된다. 이들의 등장은 회색빛 사회에 작지만 강렬한 균열을 만든다. 그저 살아남기 위한 노동만이 인정되는 공간에서, 이들이 보여주는 '쓸모없는 행위'는 오히려 인간성의 본질을 다시 되짚게 한다.
2. 디스토피아 속 예술의 반란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이들은 생산성이란 이름 아래 쓸모없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은 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그들의 표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김동식은 인간이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술에 대한 갈망’이 어떤 절망의 밑바닥에서도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회색 인간들은 점차 회색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배고프고 지친 상황에서도 여전히 ‘이야기’가 존재하고, 그것을 나누는 과정 속에서 인간다움은 회복된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예술과 노동, 인간성과 자본이라는 가치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생존만을 위한 삶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그리고 인간은 결국 표현하고 나누는 존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3.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
「회색 인간」은 단순한 상상력을 뛰어넘어, 자본주의 사회 속 무력한 인간들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예술은 밥벌이에 방해되는 사치로 취급되지만, 역설적으로 그 사치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작가는 문학적 수사를 최대한 배제한 단순한 문체로 복잡한 주제를 던진다.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 이 작품은 단지 SF적 상상력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날카롭게 짚는다. 과연 우리는 지금 회색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김동식은 이 질문을 독자에게 던지며, 무기력함 속에서도 목소리를 내고 꿈을 꾸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킨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예술을 잃지 말아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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