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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사이코패스의 탄생을 목격하다

by 책갈피 요정 2025. 5. 14.

1. 악의 탄생, 인간 본성에 대한 질문

『종의 기원』은 평범한 청년으로 보였던 ‘한유진’이라는 인물이 살인자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 내면의 어두운 본성, 즉 ‘악’의 본질을 파고든다. 주인공 유진은 어느 날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깨어나 자신이 어머니를 살해했을 가능성에 직면한다. 그는 기억을 되짚어가며 자신 안에 자리 잡은 정체불명의 공허와 폭력성을 탐색한다. 작품은 유진이 가진 반사회적 성향,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지 못하는 병리적 특성을 통해 악이 어떻게 인간 안에서 발화하고 확산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특히 작가는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 이론을 인용하며, 악은 특별한 누군가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을 수 있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이로써 악은 단순히 외부에서 유입되는 것이 아니라, 억눌리고 통제되던 인간의 내면에서 언제든 깨어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임을 강조한다. 독자는 유진이라는 인물을 통해 ‘선과 악은 얼마나 가까이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2. 서사 대신 심리로, 범죄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다

이 소설은 전작 『7년의 밤』이나 『28』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시간적 배경이 짧고, 외부 사건보다 인물의 내면에 훨씬 더 집중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머니의 죽음이며, 범인은 명확하지 않지만 유진 본인일 가능성이 높다. 이후 전개는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유진의 회상과 자가분석으로 채워진다. 어머니의 기록, 이모의 과거 진단, 해진과의 관계 속에서 유진은 점차 자신의 본질에 접근한다. 독자는 그와 함께 점점 깊은 심연 속으로 빠져들며, 유진이 왜 ‘포식자(Predator)’가 되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유진의 폭력은 단순한 충동이 아닌, 반복된 억압과 자기부정 속에서 터져 나온 결과로 묘사된다. 특히 작가는 유진의 입장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그의 행동에 어느 정도 연민 혹은 이해를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불편함과 섬뜩함이 교차한다. 이 작품은 사이코패스의 잔혹함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이 느끼는 감각과 쾌감까지 철저히 추적하며 독자의 시선을 흔들어 놓는다.

3. 인간의 윤리와 경계, 악을 마주한 독자의 선택

『종의 기원』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심리 문학에 가깝다. 유진은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공감을 모르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성향을 타고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악인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이러한 질문을 작품 전반에 깔아놓으며, 독자에게 끊임없는 판단과 고민을 요구한다. 특히 소설 말미, 유진이 해진에게 살인의 누명을 씌우고 홀연히 사라지는 장면은 인간 도덕성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는 태생적으로 악인이었는가, 아니면 그렇게 길들여졌는가’라는 고민은 작품을 다 읽은 후에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결국 이 소설은 한 사이코패스의 이야기라기보다, 악을 어떻게 마주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독자의 응답을 요구하는 이야기다. 정유정은 ‘악은 누구나의 안에 있다’는 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그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경계를 세울 것인지 묻는다. 피할 수 없는 불쾌함 속에서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섬뜩한 매력이다.